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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티벳·히말라야/책

[책] 히말라야에서 차 한 잔: 신비의 나라 부탄에서 온 편지



히말라야에서 차 한 잔: 신비의 나라 부탄에서 온 편지
2011년 3월 30일 / 브리타 다스 / 문학의 숲 / 12,800원


* 책 소개
<<세상 끝 지상낙원으로 불리는 나라 부탄.
아시아에서 가장 가난하면서도,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의 목록에 올라 있는 그곳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하며 웃고 울고 사색하며 경험한 다채로운 문화와 살아가는 방식
신비로운 베일을 벗고 진정한 모습을 드러낸 히말라야의 작은 왕국 부탄 이야기>>

부탄의 동쪽 지역 몽가르로 일 년 동안 자원봉사를 간 캐나다 여성이 전하는 부탄 이야기다. 웅장한 히말라야 설산을 배경으로 훼손되지 않은 본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땅 부탄에서 보낸 일 년 동안의 행복했던 경험, 예기치 않았던 사건 그리고 사람들 이야기를 솔직하면서도 감수성 풍부한 필체로 생생하게 엮어 나간다.

이 책의 원제는 ‘버터티 앳 선라이즈(Buttertea at Sunrise)’이다. 버터차는 찻잎을 끓인 물에 버터와 소금을 섞어 진한 맛을 낸 부탄의 차로, 저자는 방문하는 집마다에서 이 차를 대접받는다. 처음에는 배에 통증이 일 만큼 거부감이 드는 맛이었지만 곧 익숙해지면서 결국에는 이 차를 좋아하게 되는데 이는 저자가 부탄의 일상에 녹아드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 저자
브리타 다스
독일에서 태어나 열네 살에 가족과 함께 캐나다 토론토로 이주하였다. 캐나다 웨스턴온타리오대학에서 물리치료 부문 학위를 받았고, 인도, 네팔, 부탄,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 등지로 배낭여행을 다녔다. 1997년 영국 대외자선봉사 단체인 VSO의 후원 아래 물리치료사로 부탄에 들어가 경험한 내용을 [히말라야에서 차 한잔]에 담아 펴냈다. 현재 토론토에서 남편, 두 딸과 함께 지내면서 물리치료사 일을 계속하고 있다.


* 목차
프롤로그
1. 동쪽으로 가는 길
2. 멀리서
3. 첫 만남
4. 눈을 감지 말아요
5. 라모
6. 허리가 휘는 일
7. 초덴
8. 미물에도 자비를
9. 지루하지 않아요?
10. 히말라야에서 차 한잔
11. 노인 수행자
12. 초르텐과 기도 깃발
13. 목발을 짚고 학교에
14. 진리인가 돈인가
15. 카담 고엠바
16. 빛의 춤
17. 타시양체에서의 고난
18. 소라 나팔 소리
에필로그
옮긴이의 글


* 책 속으로
노르부 아마는 기분이 한껏 부풀어 있다. 끊임없이 이야기를 쏟아내며 우리의 찻잔을 채워 준다. 그 차는 뿌옇고, 기름방울들이 둥둥 떠 있다. 나는 조심스레 한 모금 홀짝여 본다. 느끼한 맛이다! 그리고 아주 많이 짭짤하다! 대체 무슨 차가 이런 맛이란 말인가? 노르부 아마가 기대에 찬 표정으로 나를 본다. 나는 억지웃음을 짓는다. 혀와 배 속이 오그라드는 느낌이지만. 내 배는 그 이상한 액체의 역겨움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듯싶다.
“수유차예요.”
비쿨이 알려 준다.
“버터차죠. 전에 마셔 본 적 있어요?”
나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괜찮죠?”
그의 물음에 나는 마지못해 동의한다. 차가 아니라 느끼한 수프 같다고 생각하면서 다시 한 번 용기를 내어 한 모금을 마신다.
“여기, 이걸 넣어서 먹어 봐요.”
비쿨이 자오를 한 움큼 집어 내 찻잔에 넣어 준다. 나는 그런다고 맛이 좋아질까 싶은 마음으로 자오를 넣은 차를 흘끔거린다. 입맛이 당기지 않기는 마찬가지이다. 둥둥 떠 있는 쌀알에 밀려 기름기가 안 보이는 것이 그나마 좀 낫다고 할까. 그래도 예의상 다시 한 모금을 마신다. 놀랍게도 맛이 그런대로 괜찮다. 자오를 오도독오도독 씹다 보니 짭짤한 차 맛에 서서히 속이 풀리는 것 같다. 나는 또 한 모금 마신다. 마실수록 맛이 더 좋아진다.
결국 노르부 아마가 몇 번이나 내 찻잔을 채워 줬는지 모를 만큼 많이 마신다.
(/ pp.181~182)

마야가 입이 귀에 걸리도록 활짝 웃으면서 어서 안으로 들어가라고 재촉한다. 시커먼 컨테이너 박스 안은 어두컴컴하지만 말끔하고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다. 문 바로 옆에 난로가 있고, 그 왼쪽의 부엌에는 냄비 두어 개와 플라스틱 그릇, 찌그러진 알루미늄 그릇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창문은 하나도 없고, 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 안쪽 깊숙이 있는 침대를 희미하게 비춘다. (중략)
차를 준비하느라 불 앞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마야의 등을 보면서,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도로 건설 현장에 나가서 일하는 그녀의 일과에 대해 생각해 본다. 사리의 얇은 면 블라우스로 덮인 등은 낙타의 혹처럼 툭 튀어나와 있고, 가녀린 몸은 바짝 오그라든 채 옷감 다발 속에 감춰져 있다. 앙상한 두 팔은 연결되지 않은 부속물처럼 길게 뻗어 나와 있고……. 꼿꼿하니 당차 보이는 건 그녀의 머리뿐이다.
차는 향긋하니 맛이 좋다. 나 혼자 어색하게 차를 홀짝거리는 중에도 인심 좋은 주인은 불을 살피느라 바쁘다. 마야가 냄비들을 가리키면서 나를 본다. 저녁식사를 하고 가라는 뜻이다. 나는 어렵사리 사양의 뜻을 전한다. 벌써 밖이 어두워지고 있어서 그만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마야는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한 모양이다. 웃음 띤 얼굴로 감자들을 꺼내기 시작한다. 나는 미안해하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녀의 가족이 먹을 음식도 충분치 않음을 뻔히 알고 있는데, 어떻게 저녁까지 얻어먹을 수 있겠는가? 나는 벌떡 일어나서 마야의 어깨를 부드럽게 다독인다. 그리고 늘 통하는 핑계를 댄다.
“폴랑 남라.”
마야는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 못하지만, 그녀의 아들이 알아듣는다. 아들이 뜻을 말해 주자 마야는 걱정스런 눈길로 내 배를 본다. 배가 아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표정으로.
마야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감자들을 옆으로 치워 놓더니, 뭔가를 다시 생각하는 듯한 얼굴을 한다. 그러더니 노련하게 불을 되살려 놓은 다음, 보물 상자를 다시 열고 달걀을 두 개 꺼낸다. 막무가내로 달걀을 쥐여 주는 마야를 끝내 뿌리치지 못하고, 나는 고마우면서도 미안한 마음으로 삶은 달걀을 받아 든다. 마야는 내가 달걀을 먹는 모습을 흡족한 듯 지켜본다. 나는 어떻게 해야 예의에 어긋나지 않는 걸까 고민하며 달걀 껍질을 벗긴 다음 접시에 내온 거친 소금을 찍어 먹는다.
(/ pp.255~258)